조직 문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 같아 보여도,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충분한 고민 없이 선언된 조직 문화는 팀원마다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고, 팀원 중 일부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숱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조직 문화가 잘 정착된 팀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블럭스(Blux)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빠른 실행으로 신속히 답을 찾는다’는 핵심 가치는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블럭스에게 진정 필요하지만, 팀원 모두가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 실천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구체적인 기준과 맥락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년 11월부터 블럭스는 조직 문화를 재정립하는 프로젝트인 ‘기둥 세우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가졌던 고민과 함께 블럭스의 문화 재정립 프로젝트 ‘기둥 세우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기둥 세우기’ 프로젝트의 시작
저는 엔지니어 일을 하고 있지만, 블럭스에 입사하기 전부터 조직 문화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블럭스에 합류한 후 다양한 협업을 경험하면서 조직 문화가 업무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팀원들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원인을 고민하던 중 조직의 ‘기둥’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블럭스에는 이미 조직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 사이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마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블럭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문서로 정리되어 있었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그 기준이 명확하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체득되기보다는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저는 ‘블럭스가 더 좋은 팀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던 중 ‘블럭스의 문화집’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블럭스의 기존 문화는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에는 표현과 기준이 모호했습니다. 또한, 누가 얼마나 문화를 실천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고, 이는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과정에서도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전사 회의에서 팀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실행 가능한 조직 문화를 세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특히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팀원들이 체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블럭스의 문화 재정립 프로젝트, ‘기둥 세우기’가 시작됐습니다.
‘기둥’이란 무엇인가?
‘조직 문화면 조직 문화지, 기둥은 대체 무슨 뜻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문화를 ‘기둥’으로, 조직 문화 프로젝트를 ‘기둥 세우기’라고 부르게 된 배경을 설명하겠습니다.
사실 ‘기둥’이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팀 차원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발견도 아니었고요. 이 개념은 제가 정말 좋아하고 친한 지인과 나눈 대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정을 지니고 있어. 그 가정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지.”
저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공감했습니다. ‘이걸 좀 더 직관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중에 지인이 ‘기둥이라고 얘기하면 어때?’라고 제안했습니다.
기둥은 삶의 철학, 가치관, 신념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자 의사결정의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기둥이 단단히 세워져 있으면,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진정 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선택 기준이 바로 삶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도전적인 스타트업이 좋아.”
“나는 연애할 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어.”
“연애는 대화가 전부야.”
이처럼 삶의 기둥은 사소한 가치관에서부터 삶을 관통하는 철학까지 포함합니다.
기둥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이후 저는 제 기둥과 지인들의 기둥을 알아내는데 흥미를 가졌습니다. 오랫동안 합을 맞춘 동료와 대화하던 중 서로의 기둥이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우연한 발견 덕분에 새로운 통찰을 깨달았습니다.
관계가 오래 지속되려면, 서로의 기둥이 정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밤낮없이 헌신하며 일한 스타트업에서 ‘여긴 내 자리가 아니었어’라며 퇴사를 결심하는 것도, 수년간 함께한 공동창업자가 ‘결국 우리는 다른 길을 가야 해’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결국 서로의 기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결국 같은 기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깨달음 덕분에 저는 기둥 개념을 개인에서 조직으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블럭스 팀원들에게 ‘팀의 기둥’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팀의 기둥이란?
팀의 기둥은 조직의 철학, 핵심 가치, 행동 원칙, 프레임워크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블럭스의 기둥은 ‘블럭스는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자 팀 전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둥이 단단하게 세워져 있어야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아래와 같은 선택 기준이 바로 팀의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객의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빠른 실행을 통해 배우고 개선한다.”
“모든 의사결정은 데이터 기반으로 한다.”
21세기를 대표하는 기업들 역시 각자의 기둥을 가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우리는 탁월하고, 규칙은 없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자유롭지만 높은 책임감을 요구하는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스페이스X는 ‘물리 법칙 외에는 모조리 바꿀 수 있다’는 기조 아래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하며,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세상에서 가장 고객에 집착하는 회사’라는 기둥을 중심으로,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을 고객 중심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기업이 기둥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이를 기반으로 일관된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기업 문화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1-way-door decision’과 ‘2-way-door decision’ 같은 프레임워크도 조직의 기둥을 실행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즉, 팀의 기둥은 팀이 공유하는 철학이자 핵심 가치이며, 우리가 함께 정한 행동 원칙입니다.
팀의 ‘기둥’이 발휘하는 힘
“그러면 기둥은 결국 전통적인 의미의 조직 문화 아닌가요? 굳이 ‘기둥’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가요?”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 가지 이유로 ‘기둥’이라는 표현을 고집했습니다.
첫째, 기둥은 선입견 없는 새로운 표현입니다. ‘철학’은 어렵게 느껴지고, ‘행동 원칙’은 다소 경직된 느낌을 주며, ‘문화’라는 단어는 추상적이고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둥’은 기존 개념에 대한 선입견 없이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 그 의미가 정해지는 순수한 개념입니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처럼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연한 개념이죠.
둘째, 기둥은 머릿속에 명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철학’이나 ‘핵심 가치’ 같은 개념은 추상적이지만, ‘기둥’은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단어입니다. 기둥은 건물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없으면 건물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기둥에는 때때로 낙서를 하거나 색을 덧입힐 수도 있고, 필요하면 다시 다듬거나 바꿀 수도 있습니다. 기둥은 일부 사람들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세우고 가꿔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둥이라는 개념은 실제로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셋째, 기둥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부드럽습니다. 개인적인 이유지만, 저는 기둥이라는 단어가 왠지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둥’ 하는 울림 덕분에 단단함과 안정감을 주면서도 가볍게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가끔 귀엽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만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조직 문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
조직 문화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이미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이 매번 강조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문화가 실천되려면 그것이 팀원들에게 충분히 공감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전제가 없다면, 기둥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바로 ‘구체성’입니다. 구체성이 부족한 팀의 기둥은 결코 실천될 수 없습니다.
제가 입사하기 전인 작년 여름, 블럭스의 조직 문화집이 탄생했습니다. 저는 이를 처음 보고 ‘와! 너무 맞는 말이다!’라고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동안 의미를 곱씹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지?”
이 질문을 계기로 블럭스의 문화집이 곧장 실행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둥 세우기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 누구나 ‘나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명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더 풍부한 맥락을 제공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행히 블럭스의 팀원들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그 덕분에 기둥 세우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블럭스로 나아가는 여정의 시작
블럭스는 이런 마음을 담아 조직 문화를 처음부터 다시 정립하고 있습니다.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블럭스의 기둥’이라 부르며, 더 좋은 기둥을 세우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의미 있으면서도 실천 가능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지엽적이지 않은 토대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블럭스는 팀원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두 개의 기둥을 먼저 세웠습니다.
아직 모든 기둥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블럭스의 기둥은 팀원들의 논의와 의견에 따라 더욱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먼저 정해진 두 개의 기둥을 짧게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 기둥은 ‘확신을 위해 의심한다’입니다. 블럭스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의심했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왜냐하면 충분한 의심이 곧 확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제 피드백을 해야 할까?’, ‘이렇게 말하면 감정이 상할까?’ 같은 고민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블럭스에서는 '의심해 주세요'라고 먼저 요청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두 번째 기둥은 ‘서로를 진정한 동료로 생각한다’입니다. 블럭스는 다정하고 친절하며, 배려심이 깊은 팀입니다. 치열한 논의 속에서도 끝에는 왁자지껄한 웃음과 미소가 함께하는 것이 블럭스의 문화입니다.
블럭스는 진정한 동료로서 서로를 대하기 위해 추측하기보다는 질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듣고, 결심하기 전에 한 번 더 질문하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블럭스는?
현재까지의 기둥 2개 외에도 저와 블럭스 팀원 모두는 우리가 실제로 지킬 수 있는 기둥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블럭스의 기둥 덕분에,
블럭스는 더 빠르고 더 많은 의사결정을 하게 됩니다.
같은 기둥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과도한 대립으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상황이 줄어듭니다.
팀원의 의사결정을 믿게 하는 구심점이 되어, 적재적소의 위임도 더욱 원활해집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블럭스에 합류할 새로운 팀원들은 기둥을 거푸집 삼아 ‘블럭스에서의 나 자신’을 쉽게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블럭스에 어울리는 많은 기둥을 세우고 부수며, 우리만의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끝으로, 이번 글이 쉼 없이 달려가는 모두에게 ‘나는 어떤 기둥을 믿고 살아가는가?’를 돌아볼 기회가 되었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업 문화가 단순히 지루하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 실천할 수 있는 가치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았길 바랍니다.
블럭스는 앞으로도 우리만의 기둥을 세우고 다듬으며,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팀원들이 자신의 기둥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무엇보다 이 지난한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 주는 블럭스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기둥을 세워가며 더욱 단단한 팀을 만들어가길 기대하겠습니다.
글쓴이 김태호(Teo) 블럭스 Software Engineer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블럭스가 좋습니다. ICONIC함을 꿈꾸며, 호기심을 쫓습니다. |